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한 바람이다. 적어도 인터넷 매체 기자라는 신분으로 글을 쓰며 먹고 살고 있으니 아직 내 인생에서 글을 버리진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하지만 기사는 나의 글이 아니다. 철저한 타인의 글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런 글은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문학을 할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다.

문득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문학으로 이끌었고 무엇때문에 작가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적합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았다. 한 시인이 21명의 시인과 소설가를 만나 그들의 인생과 문학관을 그려낸 책이다.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이 책의 제목이자,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윤대녕 작가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말 작가 다운 말이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세상에 글쓰고 책읽는 일 외에도 얼마나 재밌고 행복한 일들이 많은가?

하지만 이 말 속에는 고통이 담겨 있다.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을까? 스물 한명의 작가를 만나 이책을 편 원재훈 시인은 책 서두에 고통의 꽃이 문학이라고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글쓰기를 통한 창작의 과정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더듬으며, '나 아직 살아 있구나'라고 확인하는 방식이랄까.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인터뷰부터 골라 읽었다. 윤대녕, 김연수, 신경숙 등등.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내가 소설을 참 가까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읽었던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등 시인들의 인터뷰를 읽었다. 시인의 마음가짐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글쓰기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했다. 시인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좋아하지만 내 글을 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시인처럼 생각하고 소설가처럼 글을 쓰자'라고 정리했다.

아무튼이 책은 밑바탕도 없는 나의 문학관에 거름이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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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8점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


책모임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해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내가 읽기 시작한 8월 초 쯤, 이명박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약간 찜찜했지만 그냥 읽기로 했다.

공리주의-자유주의-공동체 주의 등 정의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들에 대해 저자의 논리를 하나 하나 따라 가며 읽은 맛이 제법이었다. 철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익히 알고 있는 사건들이나 상상력이 돋보이는 예시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따라 갈 수 있었다.

저자가 자유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현실에 대해 따금한 충고를 할 때 마다, MB가 왜 이 책을 휴가때 읽겠다고 자처했는지 궁금증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MB가 이 책을 읽었는 지, 안 읽었는 지는 자신 밖에 모른다. 청와대에서는 다만 MB가 휴가 때 E-BOOK에 이 책을 담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E-BOOK용 한글 번역판은 출시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MB가 이책의 영문판을 읽었단 말인가? 아무튼 청와대는 MB가 이책을 읽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어 갈 때 쯤. 청와대가 왜 이책을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으로 소개했는지 알게 됐다. 8.15 광복절이었다. MB는 새 현판을 단 광화문 앞에서 8.15 경축사를 읽어 나갔다.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 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합니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집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중략)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시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커졌지만,
책임의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만과 불신이 팽배한 사회풍조도 걱정스럽습니다.
개인주의는 만연하는 데 반해
가족과 같은 전통적공동체는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의 가치와 발전의 의미를
다시 성찰할 계기를 주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을 보면서 무릅을 딱 쳤다. '아! MB가 아니더라도 청와대 참모들이라도 이 책을 읽었구나!'
'공정한 사회', '공평한 기회', '스스로의 책임' 등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칸트, 롤스를 설명하면서 거듭해서 강조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마이클 샌델이 강조하는 '공동체'도 마지막에 끼워넣었으니 이 정도면 깔끔한 마무리다.

그런데 이 씁쓸한 느낌은 뭘까. "이런 사회라면 승자가 독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MB의 얼굴에서 위선이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공동체주의'를 설명하면서 '서사적 인간'을 강조한다. '나'라는 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존재라고 이해한다. 거기에 비하면 MB는 서사적 존재라기 보다는 단절적 존재다. 한반도 평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모든 것을 중단시키고, 흐르는 강물을 막은 인물이니까.

MB가 이번 경축사에 써먹을 말을 찾다가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낀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든다. 이런 내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MB가 갑자기 휴가 때 이 책을을 읽고 한순간에 깨닫고 마음을 고쳐 먹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고 MB가 돈오돈수의 경지에 다다랐을 리는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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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어간다 - 10점
윤대녕 지음/문학동네
윤대녕의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를 읽었다. 내게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마흔 살을 넘긴(2004년 발간했으니 지금 작가의 나이는 40대 후반쯤 되겠다) 작가의 중후한 사색의 깊이를 맛볼 수 있었다. 작가도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많은 인간이지만, 평범한 이들보다 먼저, 보다 깊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그 사색의 결과물을 읽으며 작가가 제기한 인생의 문제를 사색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소설에는 다양하지만 중첩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결혼식 날 신부를 떠나보낸 남자, 그 남자를 떠나 세기말 가장 해가 늦게 지는 곳에서 자살하려는 여자, 매일 밤 같은 시간 동거녀가 사라지는 시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남의 시간을 사는 남자, 아내가 없는 열흘 동안 분열된 자아와 대화하며 고뇌하는 남자... 모두 상실의 아픔에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 작가 자신이 투명되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작가가 제주도에 기거하면서 쓴, '찔레꽃 기념관',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 '올빼미와의 대화'에는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상실과 단절로 상처받은 인간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할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이 책의 해설에서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정체성의 상실, 정체성의 위기라고 했다. 윤대녕 작가도 정체성 상실을 고민하고 있고, 이 책은 읽은 나도,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어찌된 일인지 내게는 작가이기보다 사람이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요즘 내가 인터넷신문 기자 질을 하면서 느끼는 혼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번 주말 10년 만에 지리산을 찾는다. 결국 나의 상실된 정체성을 현실 공간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 현실 공간을 일시 정지 해두고 다른 공간에서 고민해 보는 편이 쉽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현실 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답을 찾아 돌아올지, 적어도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길러서 돌아올지 아직 불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나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혹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봐야 내가 쳐 놓은 찔레꽃 울타리 안에서 유효한 답일 뿐일 지도... 나는 언제쯤 그 울타리를 넘어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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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 - 10점
모리스 마이스너 지음, 김수영 옮김/이산
중국 현대사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서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집었던 책에 이렇게 빠져들 지는 몰랐다.

모리스 마이스너라는 미국의 학자가 쓴 책이다. 미국의 중국학자 중에서 비주류에 속하지만 중국 현대사에 정통한 학자로 손꼽힌다고 한다. 글 속에 마오에 대한 애정 깊은 비판이 담겨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왜곡된 시각이나, 자신의 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중국 지도층의 부풀려진 시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마오 비판자로부터 힐난을 받는 50년대 '대약진 운동' 이나 60년대 '문화대혁명'도 또 다른 시각에서 비판한다.

특히 마오라는 인물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인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비록 중국 역사에 큰 부담이 되는 결과를 낳았을 지 모르지만,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를 위한 실험들은 언젠가 중국 후세에 교훈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오 그 이후의 중국. 덩샤오핑 이 이끈 중국의 현재 모습이 자본주의의 폐해로 가득 차게 됐는 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 쿠바와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1,2권으로 된 이 책을 완독 다음, 나는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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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사색 - 10점
송두율 지음/한겨레출판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는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얘기한다. 남과 북, 두 곳 모두 이해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

'경계'라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인류 초기부터 경계라는 것은 지리적인 공간을 구분하고 자신의 소유 등을 지키기 위한,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개념이기도 하다. 보통 우리가 '경계'라고 부르는 것은 공간적 영역에서의 '경계'이다.

공간적 영역에서의 '경계'는 많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경계'를 통해서 각 지역의 특징이 만들어지고, 문화가 생기고,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변화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지역과 맞닿은 지역에서 경계를 나눈다는 것은 각 지역의 것이 분명하게 구분된, 그래서 특징적이나 고유한 모습들이 눈에 띠거나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그래서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경계와 공간 영역의 선후관계에 대한 물음이 나올 수도 있다.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도 있다. 이 책에서 송두율 교수는 이러한 경계는 실존적인 의미를 띤다고 말한다. '안'과 '밖'의 차이가 사라지면 나와 세계도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안'과 '밖'의 구별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새는 공기 안에, 물고기는 공기 밖에 있는 것일까? 내 옆방 친구는 내 방 밖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친구 방 밖에 있는 것일까?"

송 교수는 공간적 규정이 곧장 '안'과 '밖'을 나눌 수 있는 충분조건은 못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공간의 '경계'와 부딪혀 무엇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계라는 개념은 분명하지만, 반대로 모호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경계'는 공간을 구별하는 선(線)적 개념이지만, 공간을 나누는 기준에 따라 모호하고 불분명한 점적 개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계인' 송두율은 인접한 것들의 구별을 말하는 '경계', 타자와 자아를 나누는 '경계'가 아닌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경계'를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경계'는 실존과 밀접한 느낌이다. 남과 북 사이에 '경계'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DMZ 사이에 설치된 철조망? 서해 바다에서의 NLL? 그리고 경계인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남과 북을 규정하는 '경계'는 어떤 기준으로 존재하는가. 자아와 타아를 나누는 '경계'가 아닌 자아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경계' 속에서, 다시 말해서 남과 북이라는 이중적 자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경계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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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라는 작가가 참 좋아졌다.
그 전에 읽었던 '밤은 노래한다',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장편소설을 읽을 때부터 그가 좋아졌다.

30대 중반? 후반? 아무튼 젊은 작가지만 사색이 깊이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글을 참 잘 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단편소설집이다. 2005년도 이후부터 그가 쓰온 글들이다. 그 글 속에 그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책을 읽었을 때 나는 나이 서른을 앞둔 스물 아홉살의 고민에 가득차 있었다. 마냥 하고 싶은 것만 쫓아온 20대를 돌아보면서 뭔가 허전했다.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30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이 소설집에 중에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서른살 생일을 맞는 주인공에게 일본인 육촌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바라바온 십대, 현실과 싸웠던 이십대라면, 삼십대는 멈춰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때다."

내 인생이 가볍게 느껴진 것도 너무 앞만 보고 내달려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살이 되어서 지나온 삶을 다시 꾹꾹 눌러가며 되짚어 보면 내 삶의 무게가 좀 더 채워질까. 삶의 밀도 같은 것 말이다.

아무튼 이번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집은 많이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한 책이었던 것 같다.
김연수 작가 처럼 고민이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가벼운 내 인생이 허공 속으로 날아가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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